파나마 커피의 보석 ‘게이샤’

세계 최고의 풍미를 자랑하는 커피는 무엇일까?  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   애호가들의  다양한 이견을 종합한 결과가 흥미롭다.

첫째는 인도네시아 긴 꼬리 사향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코피 루왁(Kopi Luwak)과 시벳(Civet)을 꼽는다. 잡식성인 긴 꼬리 사향 고양이는 디저트로 잘 익은 커피 열매만을 가려내 먹는다. 커피 체리의 과육은 뱃 속에서 잘 소화시키지만 커피 빈은 배설물로 버려진다.  소화액과 섞여 배출 된 루왁엔  우아한 맛과 향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희소성 때문에  가격 또한 높다.

둘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유배되었던 대서양의 작은 섬 ‘세인트 헬레나’ (Saint Helena) 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극찬 한다.

셋째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진상했다는 ‘자불럼’ (Jamaica Blue Mountain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을 ‘커피의 황제’라 부르며 선호하기도 한다.   

넷째는 미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추앙을 받는 마크 트웨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하와이  코나’(Kona) 커피를 손꼽는다. 킬라우에아  화산 경사면에서 자란 코나는  향과 맛이 뛰어나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강력 추천을 아끼지 않는다.

커피 벨트에 속한  세계 60여개의  커피 생산 국가중  파나마의 위치는 미미했다. 커피 애호가들과  사업가들 조차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은행장을 지냈고, 닉슨 대통령의 해외 경제원조 부분을 이끌었던 세계금융계의 거물  루돌프 피터슨이  파나마  보케테 하라밀로 (Jaramillo)  농장에서   게이샤를 키웠고, 2004년에   ‘베스트 오브 파나마’ (Best of Panama)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이샤’의   생두는  날렵하면서도 길쭉하고 푸른색 에메랄드 보석 빛을 띤다. 로스팅 하기 전인데도 생두 자체에서 달콤한 멜론 맛을 뿜어낸다. 명성에 걸맞게 게이샤  생두 1 파운드에 350.25달러로 낙찰되었는데,  1킬로에 미화 771달러에 해당하는 세계 최고가로 파나마의  커피 부흥에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파나마 서부 태평양 연안의  ‘치르키’(Chirqui) 주에 있는 ‘바루’ 화산(Volcan Baru) 지역의  ‘보케테’는 평균 해발 고도 1200 미터의 커피 벨트로 어린  묘목의 생장과  최고의 복합적인 향미를 머금은채  자랄 수 있는 최적지가 되었다. 열조량이 풍성하면서도 연중 섭씨 18-28도를 유지하는 쾌적한 날씨,  맛과 풍미가 가득한 생두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네랄이 풍성한 화산 토양, 풍부한 강수량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풍성한 구름이 커피 나무를 강하게 자라게 한다.  

세계적인 커피 품평가인 돈 홀리 (Don Holly) 가  게이샤  커피를 맛 보고는 ‘신을 만났다’고 극찬 한 후 게이샤는 ‘커피의 신’으로 불려졌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 회장을 지낸 릭 라인하트(Ric Rhinehart)는 ‘강렬한 아로마와 복합미가 잘 어우러졌고, 산미와 묵직한 바디감, 단맛까지 완벽하게 가미되었다. 이제껏 내가 마셔본 커피 중 가장 완벽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인텔리젠시아를 세계적 커피 전문점으로 일궈낸 생두 바이어 제프 와츠(Geoff Watts)는 ‘향이 풍성해 커피잔에서 빛 줄기가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고 묘사했다.

남한과 북한 정상, 미국과 북한 정상의  세기적인 만남이 약속된 자리에  따뜻한  게이샤 커피를 끓여 대접하면 어떨까.  생경한 첫 만남의 경직됨을 해소하기에 향내 가득한  커피보다 더 좋은 소품은 없을 듯 하다.  무서운 핵 개발, 또 무분별한 실험 발사, 가중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루머로 쌍여진 악감정을 일소시키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야한다.  명품 커피  한잔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어지길 바라고,  목표하는바  비핵화를 꼭 이뤄 화해 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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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꾸까라차’ (La Cucaracha)와 ‘그링고’

라틴아메리카 3 대 혁명이 멕시코, 쿠바, 니카라과에서  있었다.  아스떼까와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멕시코는 1521년  ‘꼬르떼스’에 의해 정복당한 후 1821년 독립할 때까지 3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배를 당했다. 독립 이후 국론은 사분오열 되었다. 연방파, 중앙집권파의 갈등과 내분, 카우디요(지방 호족)와 대농장주, 외국 자본의 지배하에서 시민 대부분이 소작농,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전국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 여파로  1848년 미국과의  영토 분쟁에서  패배하였고,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등을  빼앗겼다.  뽀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대통령의  30년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힌 인물이 북부군 사령관 빤초 비야(Pancho Villa)와  남부군 사령관  에밀리아노 사빠따(Emiliano Zapata)였다.  

당시 농민 혁명군들이 혁명 가요처럼 불렀던 노래가  ‘라 꾸까라차’다.  스페니쉬로  ‘바퀴벌레’라는 뜻으로,  멕시코 전통 빤초 옷과  챙이 큰  솜브레로(모자)를 쓰고 무리를 지어 행군하는 모습이 흡사해서다.  마치 잡아 죽여도 끊임없이  또 나타나는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 있어서,    빤초 비야(Pancho Villa)가 타고 다니던  새까만 닷지 자동차 모양같다고 해서 붙여진 노래다.

‘라 꾸까라차’의 주인공 빤초 비야의 본명은, 도로떼오 아랑고 아람불라(doroteo Arango Arambula) 다.  1878년 산후안 델리오 아시엔다 빈농 가정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누이 동생을 욕보인 농장 주인을 살해한 후 가출하여 북부 산악지대로 들어가 의적이 되었다. 1910년 15명의 농민들과 합세하여 혁명군을 조직했고,  신출귀몰한  게릴라 전으로 혁혁한 전과를 이루자  6개월만에  1만명의  부하를 휘하에  거느린 북부지역  총사령관이 되었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행정부가  독재자를 비호했기에  혁명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그는 접경도시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916년엔 열차를 타고 가던 16명의 미국인 기술자들을 살해했다. 또 뉴멕시코 주  콜럼버스에 주둔한 미국 기병대를 급습하여 살인과 약탈을 자행 후 멕시코로 줄행랑을 쳤다. 이에 미국은 존 퍼싱(John J. Pershing) 장군과  1만 2000명의 기병대를 멕시코 내륙 깊숙히 파병하여   장장 10개월에 걸친 추격 작전을 벌였다. 막강한 군사력에 감히 상대할 수 없었던 멕시코, 휘하의  많은 병사들이 살해되었지만  빤초는 가까스로 피신할 수 있었다.  토벌이란 미명하에 주권 국가를 종횡무진 헤집고 다녔던 미군을 향해  ‘푸른색 제복을 입은 자들’(Greens) 은 ‘집으로 가라’ (go home) 는 의미에서 ‘그링고’ (Gringo)라 불렀고 이 말은 후에 ‘미국인’을 가리키는 속어가 되었다.

미국 시민들의 안보, 주권, 불법 이민과 마약 밀매를 차단하기 위한 국경 쌓기와 주 방위군을 투입하려는 계획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첨단 과학 장비와 가공할만한 무기를 지니고 순찰과 체포 임무를 수행할 수천명의 그링고 등장에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이  숨죽인채 주목하고 있다.

빤초 비야는 빈자들, 농민들, 소외계층들에게  나누길 즐겨했다.  자신의 농토를 병사들에게 나눴고, 농장 안에 병원, 가게, 교회, 우체국, 학교 등을 짓고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애썼다. 어른이  되어서야 간신히 자기 이름을 쓸 수 있었던  그가  “멕시코 혁명이 완성되는 길은 교육 뿐임”을 강조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쌓여만 가는 갈등과 반목이  ‘라 꾸까라차’를  힘차게 부르는 것으로 해소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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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노 (Guano)

구아노(Guano)는 바닷새와 박쥐의 배설물과 사체가 풍화, 퇴적하여 천연의 유기물로 변화된 것을 말한다. 잉카의 께추아어 ‘와누’ (Wanu, 농업용  배설물)에서 유래했고, 해양 동물의 배설물 덩어리를 구아노라한다. 바닷새의 똥엔 질소, 인산염, 칼륨이 16-20 % 넘게 담겨있고, 유용한 곰팡이 균과 세균들이 다량 분포되어 식물의 병원균 억제, 지력을 높이고,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천연 유기농 비료로 사용된다. 

페루 태평양 연안의 이까(Ica) 지역에 위치한  ‘삐스꼬’(Pisco), ‘빠라까스’ (Paracas) , 는 일년내내 강우량이 1-2 mm 정도로 덥고, 건조하고, 사막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다. 그런 환경적인 조건이 바닷새의 똥에  포함된 질소를 분해시키지 못하게 했고, 유기 질소로 만들어 양질의 비료가 될 수 있게했다.

삐스꼬에서 태평양쪽으로 20km 떨어져 위치한 세개의 작은 섬이 ‘바예스따스’(Isla Ballestas)다.  ‘페루의 갈라파고스 군도’로 불려지는 그곳은 해양 동식물들의 낙원이다.  펠리컨, 가마우지, 훔볼트 펭귄, 플라밍고, 푸른발 부비 등 300여 종의 바닷새와, 물개, 바다 사자, 돌고래의 활발한 먹이사냥이 벌어지는 곳이다. 바닷새와 해양 동물들의 빠라이소(Paraiso, 천국)엔 생육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천적으로부터 공격은 전혀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바예스따스’ 섬 주변은 남극으로부터  빙하 녹은 차거운 해류가  28 km의 폭으로 칠레를 거쳐 페루 해안까지 거슬러 올라와 난류와 교차하는 천혜의 해양 곡창지대다.  각종 해조류와 산호초가 풍성한 그곳에 플랑크톤과 크릴 새우가 풍성하고, 거대한 안초비(Anchovy,멸치)떼를 쫓는 크고 작은 물고기와 꼰차(어패류)가 서식하는 생명이 약동하는 바다가 된다.

수천 수만의 새떼가 둥지를 지킬 땐 섬은 온통 잿빛투성이다.  이윽고 사냥하러 날아 오르면 섬 전체는 순식간에 이슬라 블랑까(Isla Blanka, 백색 섬)로 뒤바뀐다.  수십 미터 높이로 쌓여진 하얀 똥 탑이 섬 전체를 가득채워서다. 

1802년 독일의 훔볼트가 페루 태평양 연안이 유독 비옥한 것을 주목했고 그 이유가 구아노때문임을 밝혀냈다. 태양의 제국 잉까 인디오들에게 새 똥은 보물이었고, 전쟁의 이유였으며, 식량 증산에 꼭 필요한 비료임을 알았다. 남획을 방지하기 위한 엄격한 전매법을 시행하며 관리하기까지 하였다.

화학 비료가 없던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온 십여만명의 노동자들이 수천년 동안 수백미터의 깊이로 퇴적된 구아노를 채취하였다. 매해  900만톤 이상이 증기선에 실려 유럽과 미국의 농가에 수출되었고, 당시 페루의 국고를 채웠던 경제의 근간이 되었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공급 물량이 부족하자  프리츠 하버(Fritz Harber) 와 칼 보쉬(Bosch)가 대기 중의  질소를 분리하여 화학비료를 만들었고 품귀 현상을 대신할 수 있었다.

UN 식량 안보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식량위기’가 심각함을 토로하고 있다. 식량 위기는 소리없는 쓰나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전세계 약 10억명이 기아 상태에 있으며, 37개국이 절대적인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 기상이변에 따른 곡창지대의 피해, 인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 호황에 따른 소비 증가, 바이오 연료 개발로 인한 식량 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지만 획기적인 대안 마련은 쉽지 않다. 인색한 마음과 탐욕을 기경시킬 구아노가 ‘역지사지’다.   나누고 베풀면 가난과 기아문제는 넉넉히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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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 (El Sistema)

콜롬비아 인근의 마라까이보 호수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생산되었을 때 베네수엘라는 산유국의 꿈에 부풀었다. 1928년 무렵 이미 세계 제2위의 석유 생산국가가 되었고, 세계 5위의 수출국가로 명성을 날렸다.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했던 석유 자원, 한때 석유로 흥청망청했던 나라가 지금은 석유로 인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픔과 갈등을 겪고 있다.  검은 황금 채굴로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사회 기간 시설을 확립하고 균형잡힌 국가건설에  활용되지 못했다. 도리어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만성적인 사회문제의 불씨로 번졌다. 만연한 부정부패, 세계 유가 하락에 따른 외채의 증가, 1000 %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혈 쿠데타에  기본적인 식료품과 약품마저 사라져버린 그땅엔 극심한 기아와 질병이 죽음의 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젊은 영혼들에게 ‘엘 시스테마’란 음악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호세 안또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가 며칠전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무차별한 폭력과 마약에 시달리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또까르 이 루차르’ (Tocar y Luchar, 연주하면서 싸워라)란 슬로건으로 음악 교육을 시작한 것이 1975년이었다.  까라까스 시내 외곽의 가난한 빈민 지역 ‘뻬따레’ (Petare) 화벨라에서만 매년 16000명이 총격 살인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곳 빈민가에서도  엘 시스테마가 시작되자 청소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과연 음악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 시킬 수 있었다. 또 음악은 빈곤과 도시 폭력의 살벌한 환경에서 소망을 잃은채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었다.  

음악으로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 그의 신념에  뜻을 같이한  9명의  뮤지션들이 차고에서 동네 꼬마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작한 것이 ‘엘 시스테마’ 의 유래가 되었다. 현재는 베네수엘라 전국에서 70만명 이상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 합창단으로 성장하였고,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와 유네스코로부터 수상한 300여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로 연주 무대에 서고 있다.인근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본뜬 음악 학교 확산에 크게 기여를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도 소외 지역에 꿈나무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게하는 건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안데스의 작은 도시 발레라에서 태어난 호세 아브레우.  아홉세되던 해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수도 까라까스로 옮겨 작곡을 공부했다. 경제학자로  안드레 벨로 카톨릭 대학교 교수,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도 40여년 넘게 음악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에 진력했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살피지  못했다. 만성적인 위궤양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 그토록 좋아했던 담배와 초콜릿을 끊어야 했다. 한낮의 찌는듯한 여름 날씨에도 그는 늘 모직 외투를 입고 추워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 지휘자가 구스따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다. 28세에 LA 필하모닉 음악 감독이 된 그는 베를린 필, 빈 필 같은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앞다퉈 모시는 거장이 됐다.

워싱턴 한인사회 기라성 같은 한인 뮤지션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엘 시스테마가 시작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티노 어린 청소년들, 제3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음악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꿈과 비젼을 갖게 살 그런 날들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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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국 과테말라의 용기있는 결단

지난 2015 년 과테말라 총선에서 67% 의 지지율로 제 37대 대통령에 오른 지미 모랄레스(Jimmy Morales) 의 슬로건이 ‘니 꼬룹또, 니 라드론’ (Ni Corrupto, ni lardon, 반 부패, 반 도둑질) 이었다.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그는 선거 공약대로 국정을  이행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보수적인 가치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에 의거하여 부정부패와 전쟁을 선포했고,  사형제도 지지, 낙태, 동성애 반대, 만성적인 영양 실조 개선, 문맹률 타파, 공교육 장려,  전국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마약 카르텔, 조직 폭력배 소탕에 돌입하여  공공 질서, 치안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과테말라 시티에서 1969년 태어난 모랄레스(49세)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그가 세살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홀어머니와 어린 세형제는 조부모 슬하에서 생계를 꾸려야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형과 함께 시장에 나가 중고 옷들, 바나나를 팔아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TV  코미디언 경력이 이채롭다. 과테말라 싼 까를로스 대학에서 경영학 학사, 보안 및 전략연구 박사학위를 소지한 그가, 개그맨으로 방송에 섰다.  하얀 옷, 빨간 넥타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대통령 후보로 분장한 그의 정치 풍자 코미디 ‘모랄레하스’ (Moralejas)는 칼끝처럼 신랄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오또 뻬레스 몰리나 대통령, 록사나 발데티 부통령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탐욕스런 부정부패 실례들을  들춰냈다. 저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도둑질을 열거한 후 촌철살인의 해학으로 풍자하자 시민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오랜 만행에 실망하고 분노하면서도 감히 항거할 수 없었던 소시민들이 풍자 개그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끝내는 현역 정, 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이 신임 대통령 선거시 모랄레스에게 얹혀졌음은 물론이다. 현재  과테말라엔 기독교 부흥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전 국민 중 40%가  복음화 되었고, 27000개의 지역 교회에서 깨끗한 국가 재건과  청렴한 지도자 구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 당일, 모랄레스 (Morales) 대통령은 이스라엘 주재 과테말라 대사관을 현재의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이 되는 금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옮기기로 발표 한 후,  뜻을 같이한 첫번째  국가가되었다.

처음엔 과테말라도  반대하는 UN 128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러자 50여명의  국회의원과 시장이   강력히 예루살렘으로의 이전을 피력하면서 뜻을 바꿨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 유럽 공동체의 압력과 비난이 컸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해 진행되는 이스라엘 회복과 세상 역사와 종말을 감히  거스릴 수 없었다.  

‘과떼말라 뜨라스라다 쑤 엠바하다 엔 이스라엘 아 헤루살렌’ (Guatemala traslada su embajada en Israel a Jerusalén) . 성경의 예언대로 순응하는 작지만 강한나라 과테말라의 용기있는 결단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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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사(La Maza)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대모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부른 ‘라 마사’는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인 노래다. 아르헨티나 투쿠만에서 출생한 소사는 15세때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였고, 코스킨 페스티벌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또도 깜비아’ (Todo Cambia모든 것은 변한다), ‘그라시아 아 라 비다’ (Gracia a la Vida, 삶에 대한 감사) ‘쏠로 레 삐도 아 디오스’ (Solo le pido a Dios, 신에게 드리는 한가지 기도) 등 서정적인 가사와 안데스 인디오의 선율과 소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안데스를 울리는 청아한 바람소리 같다.

 

‘누에바 깐시온’ (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운동)은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안데스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을 발굴하고, 그것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군사독재 아래 착취받는 가난한 시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제국주의의 문화침략에 저항하고 맞서 싸운 노래운동을 말한다. 1959년 쿠바혁명을 동력으로 해서 1970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출범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된 민족문화운동이었다.

 

‘누에바 깐시온’의 선구자는 아르헨티나의 음유시인 아타우알파 유팡키인데 누에바 깐시온의 아버지처럼 불린다. 그의 이름에 담겨진 의미가 특이하다. 스페인 침략자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 또 잉카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9대 왕 파차쿠티 잉카 유팡키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유럽 문화에 비교하여 결코 손색이 없고 열등하지 않다는 자긍심을 갖고 아르헨티나 곳곳을 찾아 다니며 유서 깊은 안데스의 전통 민속음악을 채보했다.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300여년동안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태양의 제국 잉카 (콜롬비아, 에콰돌, 페루,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인디오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각성과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칠레의 음유시인이면서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에 대한 저항적 노래를 불렀던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는 누에바 깐시온의 어머니로 불려지고, 빅토르 하라, 레온 히에꼬, 조안 바에즈, 파쿤도 까브랄도 라틴아메리카 전통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운동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파블로 네루다의 뛰어난 문학성과 풍부한 음악적 자산이 누에바 깐시온의 노랫말이 되었다. 아름다운 안데스의 자연과 그곳에 동화되어 삶을 이어오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신변잡기들이 인디오의 선율에 합쳐지자 저들은 환호했다.

오랜 식민지배를 통해 철저하게 파괴된 자국 문명과 역사들, 탄압과 인권유린, 베어진 핏줄에서 흘러 땅을 적셨던 고귀한 생명과 그 땅의 온갖 자원들의 착취와 수탈에 아파했던 저들이 누에바 깐시온을 듣고 부르며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 민족운동의 큰 줄기로 자리 잡았고, 가난한 시민들을 억압하는 제도, 집단, 계급, 문화를 추방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독재정권과 지배자들의 기반을 허무는데 큰 몫을 했다. 정치에서 종속을 거부하고, 경제에서 착취를 반대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에서 정체불명의 제국주의 문화 침투를 배격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러한 저항운동에는 당연히 혹독한 탄압과 희생이 뒤따랐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vio Rodriguez)가 어쿠스틱 기타와 땀보르 반주에 맞춰 부른 ‘라 마사’를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교 총격 사건이후 미 전국에서 2500개 이상의 고교생들이 총기 규제를 외치는 평화 시위에 헌정하고 싶다. 오는 24일 워싱턴 디씨에서 있게 될 평화적 시위에 주의 은총 가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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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여행 (Un Viaje Sin Retorno)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돌  출신의  가난한 라티노들이  국경에 장벽이 세워지기 전 밀입국 하려고 극단적인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다.  과테말라와 인접한 멕시코 유카탄 남부의 국경도시  ‘떼노시께’ (Tenocique)와  서부 태평양 연안의 ‘치아빠스’ (Chiapas)에서 출발하는 화물열차 지붕엔 중미출신 라티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멕시코  시티(DF) 에서 합류 후  서쪽 라인은 태평양 해안으로 북상하다가  바하 캘리포니아 티후아나(Ciudad Tijuana)까지, 중부 라인은 애리조나 주와 인접한  후아레스(Ciudad Juarez),  동부 라인은 텍사스 주 경계의  누에보 라레도와  레이노사까지 이어진다. 

비교적 안전한 객차나  버스 대신 위험한 화물 열차 꼭대기에 올라  긴 여정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음의 기차’란 별명이 붙은 ‘라 베스띠아’ (La Bestia, 짐승) 를 타고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여행에 나선 처지가  작금의 중남미 현실같아 너무 안타깝다.

첫째는 여행 경비 조차 마련할 수 없는 가난 때문이다.   식솔들을 배부르게 부양하겠다던  미국행 꿈은 멕시코 종단을 채 마치기도 전에 끝나버리기 일쑤다.  안전 장치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열차 지붕위에서  낙상 사고가 빈발한다.  몇 달씩 계속되는 고단한 여정은 떨어져 수족이 잘리거나 목숨을 잃는 큰 불상사로 끝나고 만다.  

둘째는 자국엔 더 이상 소망이 없고 생명을 노리는 위협이  증폭되고 있어서다.  전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국제적 폭력 집단으로 성장한 범죄 조직들의 살인, 납치, 갈취와  폭력은 극대화 되고있고,  유약한 공권력으론 통제 불능 상태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살바돌과  온두라스의  주요 도시들은 현재 전쟁중인 시리아나 이라크 보다 더 위험하고 2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매일 속출하고 있다. 버틸 힘이  없어서,  더 이상 폭력과  수탈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라티노들이  대 탈주에 속속 가담하고 있다.  

세째는 미증유(未曾有)의  국경 장벽이  건립될까 염려 되어서다.   250억 달러의 예산으로  미국판 만리장성이 세워지고 나면  미국행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까 봐 어린 아이들까지 들쳐 업고 목숨을 건 마지막 밀입국 시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멕시코 국경도시 쉼터에 수용되어 있는 온두라스 출신의 나탈리아(20세)를 비롯한 수천, 수만의 중미 출신 라티노들이   떠나 온 자국에 돌아 갈 수도,  국경 순찰이 대폭 강화된  미국으로 밀입국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먹잇감을  찾아  주위를 맴도는 ‘엘 꼰도르’ (El Condor, 독수리) 처럼  저들의 몸값을  노리는 마약 카르텔  ‘마따 세따’의 인신매매  덫이 사방에 놓여있다.

최근 애난데일에 거주하는  알프레도(38세) 가 온두라스 고향집에 남겨뒀던 어린 두 아들을 품에 안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험난한 여정속에서 안전하게 도착한 아들과 상봉할 수 있었음은 주께서 베푸신 기적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알프레도가  이른 새벽  가족들을 위해 일자리를 찾으러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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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 스프

도시빈민들을 더욱 힘겹게 하는 세밑 겨울에 ,오브리 데이비스(Aubrey Davis) 의 동화 ‘단추 수프(bone button borscht)’로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다. 어느해 겨울 깜깜한 밤에 행색이 초라한 거지가 마을에 들어섰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거지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지쳐있었다. 마을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허기를 채울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동정심을 구해 보았지만 가난한 마을엔 그 누구도 그에게 나누어 줄 음식이 없었다.

혹시 교회에 가보면 요기할 것을 줄지 모른다는 말에 교회문을 두드렸지만 교회도 어렵기는 매일반이었다. 큰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장작 불위에 올려달라는 거지의 요청에 예배당지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응했다. 거지는 자신의 외투에 달린 커다란 단추 5개를 잘라 물속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단추로 수프를

끓인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회로 몰려 왔다. 이윽고 펄펄 끓는 수프를 국자로 떠서 맛을 본 거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온다. “햐아~ 맛이 점점 들어가긴 하는데, 여기에 야채 몇가지만 더 넣으면 정말 맛있는 수프가 될텐데….”

궁금하게 지켜보던 마을 사람 중 몇몇이 집으로 가서 자기 집에 있던 당근을, 채소를, 다른 식재료들을 가지고 와서 끓는 국솥에 넣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는 정말 환상적일 만큼 맛있게 만들어졌다. 거지는 마을 사람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고 낡은 외투깃을 여민채 떠났다. 그일이 있고난 후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단추와 함께 끓여진 ‘협력(cooperation)’이란 푸성귀들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살렸다. 그 일이 있고나서도 그곳은 여전히 가난하고 힘든 일상이 계속되었지만

‘단추 수프’를 통해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베풀고, 나누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커다란 깨우침을. 세상엔 나누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도, 나누지 못할 만큼 작은 것도 없다. 한사람, 한사람 떼어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나눌것이 없어 보이지만, 각자가 가진 작은 것을 합치면 맛있는 ‘단추 수프’처럼 모두를 위로하는 큰 힘이되고 기적을 이룰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누어 줄 것이 없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다. 동화속 마을 사람들이 내놓은 보잘것 없는 야채와 단추들이 커다란 국솥에서 어우러지며 맛있는 수프로 끓게함같이, 가진 것의 작은 부스러기만 내 놓아도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은 가난한 이웃들이 뭔가를 요청하는 손을 내밀 때 그 요청에 응답하여 내가 가진 작은것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절기다. ‘긍휼’이라는 커다란 국솥에 ‘관심’이라는 단추와 ‘나눔’이라는 채소와 ‘정’이란 향신료를 풍성히 넣은 국사발을 한그릇씩 나누고 싶다. ▷도시빈민선교 참여 문의: 703-622-2559, www.goodspoon.org

올라 치니또 (Hola Chinito)

‘고된 노동’을  의미하는 쿨리( 苦力, coolie)는 19-20세기 초에  중국계, 인도계를 중심으로한  아시아 출신 노동 이민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반 인륜적인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된 후 구미 열강들의 많은 식민지들과  미국에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에 영국은 노예를 대신하여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할 단순 노동 인력을 필요로 했다. 식민지였던 인도 대륙에서 최하층 빈민들을 납치 혹은 회유하여  인생 막장같은 고역의 현장으로 송출했다.  또 아편 전쟁에서 승리한 후  광둥성, 복건성을 중심으로  샤먼, 마카오 등지에서  가난한 중국인들을 모집했고 세계 각지에 산재한 대영제국의 식민지들, 미국, 쿠바 등지로 보내  노예처럼  혹독한 노역을 감당케했다.     

노예 상인들이 ‘바라꼰’ (Barracon, 흑인 노예 감옥)이란  모집 기관을 설치 한 후 부유한 무역상이 구인 광고하는 것 처럼 꾸민다.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을  ‘로스 꿀리스’ (Los Culis, 계약 노동자)’ 로 대우할 것 처럼 유혹한다.  흑인 노예와  쿨리의 다른 점은 노예 주인과 고용 계약서 작성 유무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명목상 꾸며진  노동 계약서는 흡사 노예 문서처럼 독소 조항이 가득차 있었다. 고용기간은 8년이고 고용주의 지시에 철저히 따라야 하며  농장, 탄광, 부두 건설, 대륙 횡단 철로 건설 등에 투입되어 목숨이 끊어지기 전 까지 노역에 투입되어야 했다.  게으름을 피거나, 반란, 도주할시 체벌이 따랐고  중도에 계약 해지를 할 수 없었던 악법이 었다.

감언이설에 속은 10만명의 쿨리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했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건설 노동자로 투입됐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82km의 파나마 운하가 1914년 완공되었을 당시  운하 건설에 투입됐던 노동자 중 말라리아, 황열병,  사고로 사망한 27500명 대부분이 쿨리였다. 1847년-1870년까지 쿠바로 송출된  쿨리는 143000명 이었으나  6개월여 항해 끝에 17000명이 부족한 식량, 열악한 환경탓에 배에서 죽었고 바다에 던져졌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쿨리는 아바나에 도착 즉시  나체로 경매장에 전시되었다. 고용주에 팔린 후 족쇄에 묶여져 노동 현장으로 직행한 저들의  75%가  계약 기간 8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고, 평균 노동 수명은 5년에 불과했다.  탈출을 시도했거나 반란을 일으킨 쿨리에겐 일벌백계의 참혹한 형벌로 다스렸다 .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쿨리들은 1910년 멕시코 혁명당시 역도로 매도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슬프고 고달펐던  쿨리의 세대가 다 지난 후 그 후예들이 중남미 곳곳에 흩어져 살고있다. 그 땅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말하고  현지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으며 근면 성실한 성품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정착을 한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남아있다.  행색이 초라하면 ‘치노’(중국인) ,  ‘치니또’로 낮춰 부르고,  단아하면 ‘하뽀네사’(일본인) 냐고 반색한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제 2의 경제 국가로 부상한 치노를 여전히 무시하는 저들의 어리석음의 도가 지나치다.  굿스푼이 정성껏 건내는 점심 도시락을 받으며 올라 치니또(Hola Chinito) 무례한 인사로 답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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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멕시코 마약의 역사

‘마약’(Narcotics)이란 무감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Narkotikos’ 에서 유래된 용어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흥분시키는 각성제, 혹은 억제하는 진정제 약물로 수면, 혼미를 야기시켜 통증을 완화시키고 쾌감을 자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말한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진  깐나비스(Cannabis, 대마초)와  아편은 멕시코에 없었다”고   저명한 학자 루이스 아스또르가 (Louis Astorga) 는 말한다. 아스떼까 원주민들은 종교적 행사에서 환각 버섯 (Hallucinogenic Mushrooms) 을 공공연히 사용했지만 스페인 정복자들로부터 대마초, 중국 노동자들로부터 아편이 전래되기까진 금시초문이었다고 한다.

철도,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중국 노동자들이 멕시코에 도착 했을 때 ‘쎄미야 데 아마뽈라’(Semilla de Amapola, 양귀비 씨앗)를 가져왔고 태평양 연안의 시날로아, 게레로 주에 특목 작물로심었다.  청초한 양귀비 꽃들은 관공서와 고관대작의 저택  장식용으로, 마약 성분인 백색 수지는  의료 목적으로만 사용했었다.  점차 멕시코 내 모르핀, 헤로인 중독이 심각해졌고, 국경 도시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된 후 마약 관련 범죄가 극렬해지자   미국은 1914년 헤리슨 법을 제정하여 아편, 코카인, 헤로인의 불법적 재배,  생산,  유통, 사용을 금했다.

이에 뿔루따르꼬 까예스(Plutarco Calles) 멕시코 대통령은 적극적 아편 생산자였던 중국인들을 강제로 추방시켜 원천 차단을 꾀했고  전국적인 확산 방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제 1차,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의 모르핀(Morphine)과 헤로인(Heroin)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멕시코에 생산을 요청했고, 멕시코는 시날로아  농가에서 소규모 가족 사업의 일환으로  합법적 마약 생산을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멕시코  최악의 마약 카르텔로 우뚝선 시날로아, 마따 세타, 걸프 카르텔이  무소불위한 마약 왕국으로 세력화 된 것은 1970년 이후다.  마약 생산, 운송과 유통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된 멕시코 나르꼬(Narco, 마약 밀매자) 들은 남미 콜롬비아 메데진, 깔리 카르텔과의 동맹을 체결하면서부터 괴물로 탈바꿈하였다.  미국을 마주 바라보는 국경도시 티후아나, 후아레스, 노갈레스, 따마울리빠스(Tamaulipas) 지역의 수백개의 공장들이  폭력을 당해 폐업을 했지만  마약 밀매는 번창일로에 있고, 라이벌 카르텔간의 전쟁, 살인, 납치, 고문은 정부 공권력으로 감당치 못 할만큼  확산되고 있다.

 

멕시코 가난한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서 ‘나르꼬’에 대한  잘못된  존경심이 너무 심각하다. ‘꿀리아깐’(Culiacan)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생산된 생아편 12Kg 이 정제되면 1 kg 의 고농축 헤로인이 되고  4천 달러에  매매된다.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 L.A 에 반입되면  수백만 달러에 판매되어 수만명의 심신과 가정을 파괴하게 된다. 

수퍼 부자의  차고 넘치는 재물을 강제로 탈취하여 빈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던 멕시코 의적  헤수스 말베르데 처럼  나르꼬를  무한히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라 멕시코의 미래가 암울하다.   고귀한 생명과 가정을 마약으로 파괴하고 축적한  돈으로 구입한 고성능 무기들, 럭셔리한 자동차, 호화로운 저택, 명품 옷과 신발들,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채 산해진미를 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저들은 공공의 적에 불과하다.  피 묻은 돈이  세탁하기 위해 교회  헌금으로 기부돼선 안된다.  또 빈자들을 위한 구제품으로 나눠진다 해도 결코 그 죄와 끼친 해악이 정화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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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삼숙 선교사 추모사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그땅의  고아들을 사랑했던  백삼숙 선교사가  주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아이티의 사람들로부터  ‘빠스떼’(Pastor)로 불리기 보다는 ‘자애로운 엄마’로 불리길 더 좋아했던 그가  10월 어느날  버지니아에서 급성 패혈증으로 스러졌다.

아이티는  ‘산이 많은 땅’이란 의미다.  카리브해의 보물섬이었던  포르또 프랭스는  왕자의 항구로  이스파니올라(Hispaniola) 섬의 서쪽에 있고,  섬의 동쪽은  스페니쉬를 사용하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메릴랜드보다 작은 그곳엔 전체 인구 900만명 중 95 %가 아프리카 흑인 후예들이고, 5%는 약간의 백인과 뮬라토(흑인과 인디오 혼혈)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1월 12일, 진도 7의 강력한 지진이  수도 포르또 프랭스(Port au Prince), 아이티 내에서도 가장 치안이 열악한  ‘시떼 쏠레이’(Cite Soleil),  ‘깝 아이시엔’ (Cap Haitian) 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당시 지진으로 300만명이 지진 피해를 입었고, 22만명의 사망자, 수만명의  실종자, 30만명의 부상자, 230만명이 주택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였다.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병원, 공항, 감옥 등  도시의 대부분이 무너졌고 거대한 난민촌으로 돌변한 그곳에  전염병, 기아, 살인, 폭력이 난무하여 유엔군에게 치안을 맡기고있다.   아이티 인구 중  77%가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기아 선상에 있고, 진흙으로 구운 쿠키를 식사 대용으로 먹는 그곳엔 매 3초마다 어린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더욱이 사악한 부두교는 가난한 아이티 영혼을 사로잡고 여전히 위협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살벌한 영적 전투 현장으로 삼고 있다.

2002년 아이티에 도착한 백 선교사는  부모없이 방치된 채 처참하게 죽어가는 고아들의 참상을  보고 오랫동안 울며 괴로워했다.  ‘레스타백’ (Restaveks)이란,   간단한 숙식을 제공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가사 노동 어린이들을 말한다.    줄여잡아  약 3만명의 아이티 어린이들이  가난이란 족쇄에 묶여  노예처럼  혹사당하고 있고,  심지어 여자 아이들은 성적 노리개로 학대를 받으면서도  하소연 할길 없는  인권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던 인나, 조지, 슈덴, 제프린, 다빗, 뤼제, 안젤로, 피테손, 쟈스민, 나오미… 10여명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입양하여 신앙 훈련을 시켰다.  수도 인근의  ‘따바’ 지역에  사랑의 집을 마련하여 고아원 사역을시작 하였다.   현지 언어 끄레올과 한국어로 예의 범절과 성경을 가르쳤다.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한  저들이  장차  아이티의 소망이 되길 기대했기에  때론  따끔한 매를 들어 훈육을 했고 돌아서선  안스러워 눈물을 닦던  그였다.    5명의 현지 신학생들을 제자화시켜  선교 활성화를 도모했다. 빈민 지역을 순회하며 질병 퇴치사역, 현지 교회 사역자들 영성훈련, 현지인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이끌며  열정적인 사역을 펼쳤던 그가 갑작스런 주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가난과 질병, 무질서와 영적 황무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뀌어 지길 소망했던  그의 선교적 헌신이 아이티에 밀알처럼 떨어졌고 머지않아 열매로 맺힐 것이다.  그 땅과 그 곳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려고  자신은 철저히 비웠던 그의 겸손한 삶과 신앙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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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시코 인도주의 상

금년도 에밀리 디시코(Emily D. DiCicco) 인도주의 상은 굿스푼 선교회와 알링톤 무료 진료소(Arlington Free Clinic)가 각각 수상했다. 지난 주 금요일 오후 알링턴에 위치한 프리 클리닉 오피스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셜링턴 고용 및 노동자 교육센터(SEEC, Shirlington Employment and Education Center) 이사장 헤들리는(Zuraya T. Hadley)  “지난 10여년 동안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헌신한 굿스푼과 무료 진료소 사역에 감사드린다”며  축하와 함께  알링턴 카운티 에밀리 디시코 인도주의 상을 시상했다.  

에밀리 디시코는 아이오와 주 쉐넌도어에서 출생했고,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자랐다. 고교시절 코스타리카에 교환 학생으로 다녀 온 후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도시빈민들과 여성들의 열악한 인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라틴 아메리카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공공 행정학과 인류학 석사를 공부했다.  평화 봉사단 일원으로 브라질 바이아에서 4년동안 봉사했고, 해외 교육 기금의 파트너로  문화적, 경제적 빈궁함에 처한 불우한 이웃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했다.  2011년 영면하기까지 알링턴 지역에 몰려온 가난한 도시빈민 라티노들과  아프리칸 아메리칸 저소득층을 위해 고용 및 노동자 교육 센터 건립을 도왔고,  적극적으로 저들을 보살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피부색, 언어, 인종, 체류 신분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차별없이 따뜻하게 대하며 그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녀의 삶을 기념하여 알링턴 카운티는 에밀리 디시코 인도주의 상(The Emily DiCicco Humanitarian Award)을 제정했고, 매년 후보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영예로운 수상자에 선정된 굿스푼은 10년 넘게 셜링턴 도시빈민들을 섬기고 있다. 매년 100여 차례 셜링턴 라티노 일일 노동자들과 제3세계 출신의 도시빈민들을 위해  7000명분의 무료 급식으로 섬기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 교회들, 식품점에서 기증한 수천 파운드의 쌀과 부식들, 과일, 야채들이 나눠지고 있고,  세탁소, 의류 업소에서  기증한 수만벌의 의류와, 생필품 지급, 한인  치과 닥터, 내과, 척추 신경 한의사들의 무료 진료 및 약 제공, 그리고 직업 알선, 무료 이발 사역 등이 년중 무휴 사회복지 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알링턴 무료 진료소는 1994년  무 보험자,  저소득 층 환자들을 위해 병원 문을 활짝 열었다.  심장 질환, 치과, 정신과, 산부인과  등 40여 전문의, 간호사, 약제사들이  재능을 기부함으로 매년 수천명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작년 한해 동안 350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기초 진료 2925명, 특진 1221명, 여성 건강  진료 691명, 정신과 진료 및 상담 880명, 외과 진료 627명, 치과 814명,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로 4586명을 섬겼다.  

인도주의 상을 수상한 굿스푼의 소감은 짧았지만 깊은 울림이 되었다.  “로스 꼬레아노스 아만 아 로스 라티노 아메리까노스, Los Coreanos aman a los Latino Americanos…굿스푼 선교회와  한인 커뮤니티는  라티노 도시빈민들과 제 3세계 출신의 가난한 이웃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후로도 예수님처럼  저들을 보살피고 사랑하기 위해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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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중미 온두라스의 두번째 큰 도시가 싼 뻬드로 술라(San Pedro Sula)다. 수도 떼구시깔파(Tegucicalpa) 북서쪽에 위치한 싼 뻬드로 술라는 리오 베르메호, 짜멜레꼰 두개의 강(Rio Bermejo, Rio Chamelecon)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인구 80만명이 거주한다. 교통 중심지, 바나나, 커피 등 농산물 집산지인 그곳은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오모아(Omoa) 해변이 가까운 매력적인 도시다.

한때 풍요로운 경제도시였던 싼 뻬드로 술라는 현재 실존하는 세계 최악의 폭력도시, 살인도시로 악명이 자자하다.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남미 3대 마약 생산국가로부터 만들어진 코카인, 헤로인, 마리화나 운반 나르꼬 마피아, MS-18, MS-13 갱들의 살벌한 세력 싸움이 펼쳐지면서 도심지엔 화약 냄새와 피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2013년 한해동안 1411명이 살해됐고, 인구 10만명당 188명이 사망, 다수의 실종자가 발생한 범죄 도시로 전락했다. 이 수치를 서울에 적용시킨다면 매년 17,400명이 살해되는 꼴이고, 매일 4명 이상 피살된다는 통계다.

싼 뻬드로 술라를 지배하는 거대한 두 개의 라이벌 갱단이 MS-18, MS-13 이다. 리베라 에르난데스(Rivera Hernandez)와 짜멜레꼰 지역은 양쪽 갱단이 각기 분할 통치하는 구역이다. 경계 선상엔 방탄복, 무선 통신기와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이 출입자들을 통제한다. 발목에 매단  인식표를 확인하고, 차량에는 비표를 달아 피아를 식별한 후 출입을 허용한다. 생일 파티가 있어  친인척들의 방문을 위해선 반드시 갱단 두목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인적사항, 통화 기록, 방문시간, 활동 여부를 자세히 남긴다. 어떤 의문스런 행동, 복장, 표시 등을 강력히 통제하는 이유는 라이벌 갱단간 무서운 전쟁이 늘 상존하기 때문이고, 스파이로 오해를 받아 끔찍한 공격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갱단 관할 구역 내 주민들이 지켜야 할 독소 조항이 살벌하다. 예외없이 개인 당 200 렘삐라 (Lempiras, 8달러), 상점당 매월 $1000보호세, 전쟁세를 갱단에 납부해야 한다. 엄격한 규칙이  두려워 마을을 떠날 경우, 일체의 동산, 부동산은 갱단 소유로 귀속된다.  강제로 자금을 빌려 준 후 10 % 이상의 고금리 이자를 붙여 징수한다. 부녀자들을 함부로 성폭행 할 수 있고, 거주 이전, 전학을 금하고 도난 사고, 가정 폭력 발생시 갱단이 즉결 처분할 수 있다.

1960년대 L.A 지역 램파트(Rampart) 18번 가와 유니온 애비뉴에서 시작한 지역 건달 MS-18, 13이 잔인함, 악독함을 무기로 세력을 키우더니 현재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돌 최대 조폭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미국 37개 주, 디씨를 포함한 120여개 도시에서도 3만명 이상 조직원이 마약 밀매, 인신 매매, 강도, 절도, 살인 등 온갖 도시 폭력을 조장하고 있어 우려가 깊다. 가난하면서 적개심으로 가득한 십대 초반의 라티노 청소년들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여 살인 기계로 만드는 저들은 독버섯 처럼 무섭다. 얼굴, 팔, 전신에 갱단의 심벌을 문신한 자, 레드, 블루 색상의 손수건을 두건, 손목에 맨  험상궂은 라티노들을 조심하라. 한인 타운에서 암약하는 갱단과 경찰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을 숨 죽인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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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링턴 치킨 커리

커리(curry) 처럼 한 지역에서 유래한 음식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은 경우도 드물다. 커리 기원에는 몇가지 설이 있다. 첫째, 향기롭고 맛있다는 뜻의 힌두어 ‘투라리’(turarri) 로 전해지다가 후에 영국식 이름인 커리가 되었다는 설. 둘째, 남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 kari) 가 영어화되면서 변형됐다는 설이 가장 타당성있게 여겨진다.

스파이시 한 각종 향신료가 혼합된 인도 음식을 마살라(masala)라 부르고, 18세기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인도식 마살라가 밥에 곁들여 먹는 고기 스튜 형태로 변형되면서 커리로 불리게 되었다.

커리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향신료들로는,  강황(turmeric, 울금과 달리 성질이 따뜻하여 멍든 곳을 풀어주고 열을 내려주는 약효), 커민(cumin, 향내가 강하고 약간 쓴 맛), 고수 (coriander, 입맛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시켜 위장 및 복부 가스와 위통을 감소시킴), 페누그릭 (fenugreek), 계피, 카다멈 (cardamom), 고추, 후추, 겨자씨 등이 혼합되어 향긋하면서도 매운 맛을 선사한다.

인도의 대표적인 커리가 ‘코르마’( korma)다.  육류나 채소에 육수, 요구르트, 크림, 견과류, 코코넛 밀크를 넣어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마드라스’(madras)는  칠리 가루, 파프리카 가루가 많이 들어가 진한 붉은 색을 띠며 비교적 맵다. ‘빈달루’( vindaloo)는 마살라에 고기를 재웠다가 육즙과 함께 끓여 만드는데 포르투갈 지배를 받을 때 유입된 고추를 넣어 인도 커리 중 가장 매운 커리에 속한다. 인도 북부지방과 파키스탄에서 호평을 받는 ‘잘프레지’(jalfrezi) 는 양념에 재워둔 고기나 채소를 기름에 볶고, 양파, 피망, 토마토를 풍성히 넣어 독특한 맛과 아름다운 색상을 갖는다.   

커리는 인도에서 유래했지만 각 지역 특성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정해진 레시피가 따로 없으며 어떤 배합의 마살라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커리의 맛과 향, 매운 정도가 결정된다. 한국식 카레는 일본식 카레보다 강황이 많이 사용돼 노란색을 띠고 한국인 입맛에 맞춰 국물이 넉넉한 편이다. 베트남 커리에는 고추, 레몬, 코코넛 밀크, 토마토 등이 들어간다. 태국 커리인 ‘깽’( kaeng) 에는 새우 페이스트, 양파, 그린 칠리 등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내고 지역에 따라, 재료에 따라 색과 매운 정도가 다르다.

매월 셋째 토요일 오전엔 와싱턴한인교회 성도들이 만든 특별한 치킨 커리가 셜링턴에서 배식된다. 교회내 굿스푼 봉사팀 멤버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조리법과 레시피가 있다.  생닭을 적당한 크기로 토막쳐서 준비한 후 미지근한 물에 식초와 소금을 혼합한 후 한동안 담가 닭 비린내, 피 냄새를 제거한다. 다시 깨끗이 닦은 다음 불고기 양념, 커리 가루, 고춧가루, 설탕을 혼합한 마살라를 골고루 바르고 육수를 넣은 후 중간 불에서 익힌다. 달큰하게 무르익은 양파, 감자, 당근, 파를 넣어 푹신 끓여 놓으면 매콤한 치킨 커리가 완성된다. 낯선 거리 한 모퉁이에서 하루 하루 고단한 삶을 사는 이방인 나그네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황홀한 맛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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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자 보호도시 (Sanctury City)

불체자 보호도시(Sanctuary City) 란, 이민자 보호를 위해 법원의 영장이 없는 한 연방정부,  이민세관단속국 (ICE)의 단속, 체포, 구금에 협조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불체자 개인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지역을 뜻한다.

시 정부가 불체자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 경찰은 범죄 방지, 수사, 범죄자 체포 등 시민들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뿐 불법 이민 단속 요원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멕시코와 가장 긴 국경을 이루고 있는 텍사스 주는 지난 9월 1일 그레그 에봇 주지사의 불체자 보호도시 금지 법안 제정 후 서명함으로 샌안토니오, 휴스턴, 댈러스, 오스틴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불체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 법안에 시 정부 관계자와 쉐리프, 경찰관들이 불응하거나, 연방 이민당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A 급 경범죄로 규정하여 민형사상 처벌을 할 수 있고, 징역형, 또는 최소 1000달러~25500달러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텍사스를 필두로,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미시시피 등 보수 성향이 강한 14개 주들이 불체자 이민자의 미국내 출산한 자녀들의 시민권 취득을 반대하는 단일 법안을 제정 했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불체자에게 은신처나 숙식을 제공하는 행위를 3급 중범 혐의로 기소해 수감형과 함께 1만 달러를 벌금으로 부과하려는 법안도 상정하려 했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반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라티노 커뮤니티는 큰 두려움에 빠졌고 단속, 연행, 구금, 추방이란 광풍에 숨죽이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불체자 어린이, 청소년들의 학교 무단 결석이 빈번해졌고, 거주 지역은 한산해졌고, 늘 왁자지껄했던 저들의 생업 현장엔 인적이  뜸해지면서 극심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텍사스 주를 강타한 열대성 허리케인 하비(Harvey)로 인해 코퍼스 크리티, 휴스턴 지역에  40인치 넘는 폭우와 강풍이 휘몰아쳤다. 그로인해 수만의 가옥이 침수와 파괴를 당했으며, 83명의 인명 손실과 17000명이 구조되었고, 3만명이 거주지를 잃은 채 실향민으로 공공 쉘터에서 침식을 해결하고 있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최소 $700억-최대 2천 억달러의 손실을  겪은 것으로 발표됐다. 수해 복구를 위해 비지땀을 흘려야 할 때에 궂은일을 도맡아하던 라티노 노동자들을 찾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불체자 단속이란 허리케인이 북 버지니아에서도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애난데일, 스프링필드, 컬모, 알렉산드리아, 셜링턴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어 라티노들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주말 오후 페어팩스 경찰과 이민세관국 단속요원 30여명은 평소 라티노들로 붐비던 식당, 이발소, 카페, 페어몬트 아파트 단지를 봉쇄한채  검문했고 범법자들을 연행했다. 문신과 전자 팔치를 착용했는지,  MS-13, MS-18 등 범죄 조직에 가담했는지, 성폭력, 가정 폭력, 강, 절도로 리스트에 등재됐었는지를 확인 후 검거하고 있다.

불체자가 거할 안전한 쉼터는 없다. 두려워 하는 날에 사람들은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만 쓰러지고 넘어질뿐이다. 견고한 망대 같으신 전능자의 품안에 거할때만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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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마야 인디오 부족 선교하기

미국의 선교 신학자 랄프 윈터는 지난 2세기 동안에 가장 위대한 선교사 세명을 추천했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케리를 첫번째로 꼽았다.   1793년 인도 세람포에 도착하여  토착교회 설립, 세람포 대학을 통한 교육 선교에 힘썼을 뿐만아니라 , 인도의 3대 주요 언어인 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 성경 번역에 매진했다. 풍토병으로 처자식을 잃었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인도 복음화를 위해 41년동안 헌신했던 그였다. 

중국 복음화를 위해  선교의 불꽃처럼  삶을 살았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를 두번째로 꼽았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후 홍수전이 황제에 즉위했을 무렵에  벽안의 영국 청년이  4억명의 중국 영혼들을 위해 발을 딛었다.  안락한 선교사  숙소에서  거주하기 보다는 중국식 변발, 중국 복장, 돼지 가죽 신발을 신고  양쯔강 발원지를 향하여 점점  내륙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고 중국내륙 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성경 번역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캐머론 타운센드(Cameron Townsend)를 세번째로 꼽았다. 타운센드가  과테말라 깍치껠 (Cackchiquel)  인디오 마을에서  서반어 성경으로 복음을 전하던 중 인디오의 질문을 받았다. “ 하나님이란  신이 그렇게 전지전능하시다면, 어떻게 깍치껠 언어로 복음을 전할 수 없고 또 들을 수 없단 말인가?”  충격을 받고 그는 13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그들 언어를 배웠고, 마침내 깍치껠 어로 성경을 번역 했다.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선교지 원주민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임을 깨달은 그가 여름 언어학교(SIL,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와 위클리프 번역선교회(WBT, Wycliffe Bible Translators) 를 설립하여   수천개의 부족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은 미전도 종족 복음화의 탁월한 선교사로 사역을 훌륭히 감당할 수 있었다.   

애난데일에 위치한 ‘이글레시아 뻰떼꼬스떼 엘 꼰세헤로 피엘’ (Iglesia Pentecoste el Concejero de Fiel) 교회의 안또니오 목사 부부와 150여명의 성도 대부분은 과테말라 출신의 뽀꼬맘 인디오들이다.  뽀꼬치 언어와 스페니쉬로 예배하는 그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마야 인디오들이다.

 ‘이글레시아 뻰떼꼬스떼 끄리스또 비에네’ (Iglesia Pentecoste Cristo Viene) 교회의 엑또르 로메로 목사와 30여명의 성도들 대부분은  맘족 인디오들이다.

 ‘이글레시아 뻰떼꼬스떼 인떼르나쇼날 엘 뿌엔떼 데 라 비다’ (Iglesia Pentecoste International  el Puente de la Vida) 교회의 싼또스 에르난데스 목사와  50여명의 성도들은 깍치껠 인디오들이다.

과테말라에선 탁월한 농업 전문가들이었지만  미국에 올라와  온갖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성실한 노동자들이다. 영어로 의사표현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저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 생명들의 신앙 훈련을 영어로 가르치고 싶어한다. 

다민족 교회에 대한 선교 비젼을 가진 한인교회가 문을 활짝열어 저들을 맞이하고, 라티노 미션 처치가 잘 성장하도록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나눠보라. 제자도로 잘 훈련된 주일학교 교사들이  영어로 복음을 전한다면 워싱턴에서도 마야 인디오 부족 선교는 잘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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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블루 쉘터에서 만난 사람

볼티모어 다운타운을 가로 지르는 83번 고속도로와 폴스웨이가 만나는 곳에 볼티모어 시 보건국에서 마련한 코드 블루(Code Blue) 홈리스 쉘터가 있다.  도시빈민들, 노인들,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채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불우 이웃들을 돌보려고 건립된 쉼터다. 사시사철 운영되지만 특별히 쉘터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때가 겨울철 혹한기다.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노숙자들, 장애우들, 출산 일정이 임박했는데도 여전히 풍찬노숙하는 임산부 등 약 300여명을 저체온증으로부터  생명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응급 숙소다.  

과테말라  꼬방이 고향인 빠울리노(52세)는 십일년 전에 아홉 남매와 아내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왔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열심히 농산물을 키워 열 식구 생계를 책임져 봤지만 끼니를 때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고 점점 자라가는 아홉 남매들의 양육, 교육, 장성하기까지 뒷바라지를 할 수 없게되자 고향을 등지고 볼티모어에 정착했다. 페인트 공으로 성실하게 일을 했고 기초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입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송금하는 것을 낙으로 살았던 그였다. 어느날 퇴근 길에 흑인 홈리스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주급 600달러를 강탈당한 후 둔기에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 가족들에게 송금할 피 같은 돈을 다 털리고 심하게 상처를 입고 버려졌던 그는 실의에 빠졌고 깊은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다 끝내는 홈리스로 전락하고 말았다.  

3년전에 거리에서 만난 노숙자 여성 애쉴리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잠시 행복했었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볼티모어 외곽에 사람의 인적이 끊어진 허물어져가는 건물 한모퉁이였다. 겨울엔 엄습하는 추위에 떨어야 했고, 여름엔 푹푹 찌는 더위와 흡혈 곤충들의 공격이 힘들었지만 둘은 서로 사랑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꼭 살아남아 멋진 미래를 만들어 보자고 속삭이며 손을 맞잡았던  연인이었다. 얼마 후 둘 사이에 어린 생명이 태어났고 애쉴리는 산후 우울증으로 몹시 괴로워하더니 한동안 중단했던 헤로인을 다시 손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한 후 수입이 생기면 곧바로 헤로인을 주사했고 환각에 도취된 채 어린 생명도 건사할 수 없으리만치 망가지더니 끝내 폐인이되고 말았다. 졸지에 어미 잃은 어린 아들을 안고 거리를 전전하게되자 볼티모어 시 정부는 양육 부적격 사유를 적시했고 아이를 빼앗아 다른 가정에 위탁시키고 말았다.

보스턴 글로벌미션 교회 청소년들과 굿스푼 볼티모어 도시선교 팀이  220인분의 무료 급식과 생필품 선물 백을 마련하여 코드 블루 쉘터를 찾았을 때 수십명의 홈리스 속에 섞여있었던  빠울리노는 더 이상 소망없는 홈리스가 아니었다. 에스뻬란사(esperanza, 소망)가 얼굴과 마음에 반짝거리는 순박한  라티노 가장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그를 건져 올려주신 전능자 하나님께 감사하는 빠울리노가 쉘터 앞 공터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한다. 열심히 일을 해서 방 한칸이라도 마련한 후 빼앗긴 어린 아들을 다시 찾아 온 후 행복한 스윗홈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께 디오스 레 벤디가’  (Que Dios le Bendiga, 하나님의 축복 가득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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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치에서 선 채로 예배하는 라티노 어린이들

과테말라와 엘살바돌 지역은 과거 찬란했던 마야 인디오 문명의 발상지였다. U.N의 인간 개발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과테말라의 전체 인구수는 1700만명이고, 그중 약 450만명 (40 % 이상)이 마야 인디오들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전통 문화와 언어를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  또 2020년까지는 약 65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마야 인디오들 중엔  ‘아치(Achi)’족, 아까떼꼬(Akateko), 깍치껠(Kaqchikel), 맘(Mam), 뽀꼬맘(Poqomam) 등 22개 부족이 있다. 마야 인디오 부족 중 작지만 주요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부족이 뽀꼬맘(Poquomam) 족이다. 전체 부족의 수가 42000명에 불과하지만 뽀꼼치(Poqomchi)라는 부족 언어와 스페인어로 의사표현을 하면서 그 어떤 다른 부족보다 더 전통 생활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뽀꼬맘 족의 성인 남녀 인디오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작고 피부색은 짙은 갈색을 띄며 농업과 축산업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로 성실한 농부들이다.  

애난데일 콜롬비아 파이크 선상에 위치한 메소닉 템플(Masonic Temple)에서 만 6년째 라티노 교회를 이끌고 있는 호세 안또니오 목사(40세) 부부도 뽀꼬맘 부족 출신이다. 그가 섬기고 있는 라티노 교회 이름은 ‘이글레시아 뻰떼꼬스떼 엘 꼰세헤로 피엘’ (Iglesia Pentecoste el Concejero Fiel, 신실한 상담자이신 예수님의 교회)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출석하는 장년 성도 140여명 대부분이 과테말라 뽀꼬맘 인디오들의 후예들이고 온두라스 출신의 두 가정이 함께할 뿐이다. 주일 오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출석한 어린이, 청소년들이  60명이다.  

매주 주일 오후 5시에 주일 예배가 시작되면 장년들은 실내에서 예배드리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교회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실내에 저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 공간이 없어서고 장년 예배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어쩔 수 없이 건물 바깥으로 나와  좁은 포치(Porch) 밑에 도열해 보지만 적지않은 아이들의 잡담과 산만환 환경에 제대로 된 주일 학교를 진행하기란 정말 어렵다. 찌는듯한 삼복 더위 날씨는 순식간에 어린이들과 교사들을 땀으로 범벅을 만들고 만다.

가까운 미래에 교회와 선교 사역에 주인공들로 자리매김 할 저 어린 영혼들을 양육하는 환경에는 참 없는게 너무 많다. 간이 의자가 없고, 시원한 선풍기 조차 없다.  마이크가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인도하는 교사들, 악기도 없고 반주도 없어 박수치고 발 구르며 부르는 찬송.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과 교사들의 티셔츠가 어느새 땀으로 혼건히 젖어 들 때 쯤이면 예배를 드린건지 극기 훈련을 마친건지 기진맥진하여 서둘러 끝내고만 싶다. 

호세 목사와 학부모들이 교육 공간이 딸린 새로운 교회 건물을 찾고 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또 정숙한 교육 공간에서 어린이들의 연령대별로 특화된 주일학교 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대가도 지불 할 생각이다.   

건물 바깥 포치에서 더위에, 추위에, 산만함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예배하는 어린 영혼들을 위해 교회 문을 활짝 열어 맞이할 한인 교회의 출현을 고대한다. 과거 한인들을 위해 미국 교회가 따뜻한 품을 열어 교회 성장을 도왔던 것 처럼 이제 한인 교회도 라티노 미자립 교회를 위해 사랑의 품을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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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의 명약 ‘마까’ (Maca)

남미 안데스의 나라 페루, 볼리비아에 천혜의 명약 ‘마까’(Maca)가 있다. 식물학자들에 의해 ‘레피디움 메예니’ (Lepidium Meyenii)로,  잉카 인디오들은  꿰추아어로  ‘아약 치치라(Ayak Chichira)’로, 태양의 제국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 침략자들은 마까로 불렀던 신비한 약초는 산삼처럼 각광을 받고 있다. 안데스 고산지역 청정한 환경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마까의 맛은 무즙에 겨자 소스를 뿌려 놓은 것 처럼 달고 시원하면서도 톡쏘는 맛이다. 

페루의 수도 리마 북동쪽 안데스 산자락에 있는 쎄로 데 빠스꼬(Cerro de Pasco) 와 인근의 유난(Yunan) 지역은 해발 4000 m (13000 피트) 가 넘는 고산지역이다. 연중 계속되는 추위 (14 -28 F) 와 강한 바람속에서 암석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마까는 비록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그 속에  강인한 생명력과 다양한 영양소들을 품어 식용, 약용으로 사용하기에 훌륭하다. 10-12cm  길이의 짧고 가냘픈 녹색 줄기 몇가닥이 땅위에 퍼져있고 그 밑에 원추형으로 생긴 뿌리가 하나 달렸는데 순무와 흡사하다. 뿌리는 검정, 빨강, 보라, 녹색, 크림색 등 다양한 색상을 띠고 있는데 각종 미네날, 아미노산과 단백질, 비타민이 골고루 섞여있다.  페루 사람들은 그중 크림색을  제일 선호하는데 맛이 달고 사이즈가 크며 재배하기 용이해서다. 검정색 마까는  쓴맛까지 포함하지만  약효능에선 단연코 최고로 꼽힌다.

마까에는 탄수화물 60-75 %, 단백질 10-14 %, 식이 섬유 8.5 %, 지방 2.2 %, 미네랄, 칼슘, 칼륨, 철, 요오드, 구리, 망간, 아연, 리놀렌 산, 팔미트 산, 올레산 등의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또 19 개의 아미노산과 다당류를 함유하고있다.

숯불에서 갓 구워 낸 마까를 우아띠아(Huatia)라고 하는데 군고구마 못지 않게 달콤한 진미를 선사한다.  마까를 수확한 후 잎파리는 알파카의 사료로 사용하고, 뿌리는 잘 건조시킨 후 가루를 내면 몇 년동안 보관할 수 있고 다양한 요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마까를 으깬 뒤 삶아서 달콤한 액체를 만들고 다시 건조시켜 가루로 만들어 우유와 섞어 죽을 만들면 최고 영양식이 된다.  엠빠나다, 잼, 수프, 빵, 케이크에 밀가루와 함께 넣어 영양가 높은 요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마까는 평상시에 잉까 제국의 최고 권력층의 전유물로 왕과 귀족들의 자양 강장제로 사용됐었다. 거대한 잉카 제국을 건설하고 또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늘 크고 작은 전쟁이 상존했었는데, 왕은 출전을 앞둔 전사들에게 특별식으로 하사하여 결사항전 하도록 독려했고, 병사들은 흡족히 먹고 임전무퇴의 기백으로 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안데스의 슈퍼 푸드 마까는 갱년기 장애, 호르몬 불균형에 효과적이다. 면역력 증진, 심혈관 질환, 고혈압, 골다공증 완화, 기억력 향상, 만성 피로 증후군를 개선하고 근육과 힘을 키워주는데 탁월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점점 험악해져 가는 전쟁의 루머에 놀란 가슴도 마까로 진정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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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따뜻한 안경사

라티노들은 선천적으로 눈이 좋은가. 도시선교 현장에서 십수년 동안 만났던 대다수의 라티노들 중  안경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혹 실명한 한쪽 눈을 감추려고 짙은 썬글래스를 쓴 서너명을 만날을 뿐 정말 희소하다. 나안 시력이 좋다고 한다면 저들의 식생활에 특이점이 있지는 않을까. 눈 건강에 특별히 좋은 라틴 음식, 열대 과일은 무엇일까. 혹시 노동 시장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라티노들이 젊은 노동자들이라 상대적으로 안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저들도 한인들처럼 분명 눈이 침침하고, 안압이 높고, 백내장, 녹내장의 문제가 있으면서도 궁색한 처지에 검안을 못하고 안경을 맞춰 시력 교정을 하기가 힘들어 방치한채로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궁금했다.

애난데일에서 불란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한만수씨는 도시빈민들을 위해 사업장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무료 검안, 무료 안경 제작을 부탁하는 굿스푼의 청탁  전화를 받는 그의 대답은 언제나 시원스럽다. “예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오셔서 검안하시고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고르시면 안경 장인의 정성과 사랑으로 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빈민들의 어둡고 답답했던 눈을 환하게 밝히는 안경을 선물하며 즐거워 한다.

높은 안압으로 인해 두통이 심하고 시력 상실이 우려되는 페루 출신 길례르모씨에게 안경을 선물했다. 녹내장으로 실명했고 그로 인해 젊은 나이에 소천했던 그의 모친을 닮아 그에게도 녹내장 증세가 있음을 알게되면서 그는 오랫동안 근심에 눌려있었다. 몇 달째 일자리까지 구하지 못해 호구지책이 어려울 때 한씨의 따뜻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안경을 선물로 받고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얼마전 한씨의 사업장에 흑인 언어 장애인 단테 케스(Dante Kess)씨가 들어섰다. 단테씨는 볼티모어 다운타운의 저소득층 정부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치즈 펙토리에서 허드렛일을 했었다. 의사소통이 신통치 않은 그에게 직장 동료들은 심하게 괴롭혔고 끝내는 거리로 내몰았다. 굿스푼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며 연명하고 있던 그는 천성이 착하고 글 읽는 것을 좋아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독서와 보행이 어려웠을 때 한씨를 만났다. 멋진 뿔테 안경을 선사받은 단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들었고 더듬거리는 말소리엔 기쁨과 감사가 담겼다

에드워드 김씨(67세)씨는 70년대 중반에 미국에 왔고 열심히 일해 아메리카 드림을 이뤘던 성공한 이민자였었다. 외아들이 죽고 오랜 도박 중독, 이어진 삶의 우여곡절 그리고 끝내 홈리스로 전락하여 거리를 전전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가 지팡이를 잡고 불란서 안경점을 찾았을 때도 한씨는 친절하게 맞이했고 정성껏 안경을 만들어 선물했다. 한씨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일을 제일 잘하고 또 즐거워하는 가슴이 따뜻한 안경 달인이다. 재능을 통해 불우한 이웃들에게 환한 비젼을 회복 시키고 또 삶의 소망을 나누는 일을 하게 되어 도리어 기쁘다는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랑 나눔을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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