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삼숙 선교사 추모사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그땅의  고아들을 사랑했던  백삼숙 선교사가  주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아이티의 사람들로부터  ‘빠스떼’(Pastor)로 불리기 보다는 ‘자애로운 엄마’로 불리길 더 좋아했던 그가  10월 어느날  버지니아에서 급성 패혈증으로 스러졌다.

아이티는  ‘산이 많은 땅’이란 의미다.  카리브해의 보물섬이었던  포르또 프랭스는  왕자의 항구로  이스파니올라(Hispaniola) 섬의 서쪽에 있고,  섬의 동쪽은  스페니쉬를 사용하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메릴랜드보다 작은 그곳엔 전체 인구 900만명 중 95 %가 아프리카 흑인 후예들이고, 5%는 약간의 백인과 뮬라토(흑인과 인디오 혼혈)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1월 12일, 진도 7의 강력한 지진이  수도 포르또 프랭스(Port au Prince), 아이티 내에서도 가장 치안이 열악한  ‘시떼 쏠레이’(Cite Soleil),  ‘깝 아이시엔’ (Cap Haitian) 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당시 지진으로 300만명이 지진 피해를 입었고, 22만명의 사망자, 수만명의  실종자, 30만명의 부상자, 230만명이 주택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였다.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병원, 공항, 감옥 등  도시의 대부분이 무너졌고 거대한 난민촌으로 돌변한 그곳에  전염병, 기아, 살인, 폭력이 난무하여 유엔군에게 치안을 맡기고있다.   아이티 인구 중  77%가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기아 선상에 있고, 진흙으로 구운 쿠키를 식사 대용으로 먹는 그곳엔 매 3초마다 어린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더욱이 사악한 부두교는 가난한 아이티 영혼을 사로잡고 여전히 위협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살벌한 영적 전투 현장으로 삼고 있다.

2002년 아이티에 도착한 백 선교사는  부모없이 방치된 채 처참하게 죽어가는 고아들의 참상을  보고 오랫동안 울며 괴로워했다.  ‘레스타백’ (Restaveks)이란,   간단한 숙식을 제공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가사 노동 어린이들을 말한다.    줄여잡아  약 3만명의 아이티 어린이들이  가난이란 족쇄에 묶여  노예처럼  혹사당하고 있고,  심지어 여자 아이들은 성적 노리개로 학대를 받으면서도  하소연 할길 없는  인권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던 인나, 조지, 슈덴, 제프린, 다빗, 뤼제, 안젤로, 피테손, 쟈스민, 나오미… 10여명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입양하여 신앙 훈련을 시켰다.  수도 인근의  ‘따바’ 지역에  사랑의 집을 마련하여 고아원 사역을시작 하였다.   현지 언어 끄레올과 한국어로 예의 범절과 성경을 가르쳤다.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한  저들이  장차  아이티의 소망이 되길 기대했기에  때론  따끔한 매를 들어 훈육을 했고 돌아서선  안스러워 눈물을 닦던  그였다.    5명의 현지 신학생들을 제자화시켜  선교 활성화를 도모했다. 빈민 지역을 순회하며 질병 퇴치사역, 현지 교회 사역자들 영성훈련, 현지인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이끌며  열정적인 사역을 펼쳤던 그가 갑작스런 주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가난과 질병, 무질서와 영적 황무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뀌어 지길 소망했던  그의 선교적 헌신이 아이티에 밀알처럼 떨어졌고 머지않아 열매로 맺힐 것이다.  그 땅과 그 곳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려고  자신은 철저히 비웠던 그의 겸손한 삶과 신앙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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