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 (El Sistema)

콜롬비아 인근의 마라까이보 호수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생산되었을 때 베네수엘라는 산유국의 꿈에 부풀었다. 1928년 무렵 이미 세계 제2위의 석유 생산국가가 되었고, 세계 5위의 수출국가로 명성을 날렸다.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했던 석유 자원, 한때 석유로 흥청망청했던 나라가 지금은 석유로 인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픔과 갈등을 겪고 있다.  검은 황금 채굴로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사회 기간 시설을 확립하고 균형잡힌 국가건설에  활용되지 못했다. 도리어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만성적인 사회문제의 불씨로 번졌다. 만연한 부정부패, 세계 유가 하락에 따른 외채의 증가, 1000 %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혈 쿠데타에  기본적인 식료품과 약품마저 사라져버린 그땅엔 극심한 기아와 질병이 죽음의 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젊은 영혼들에게 ‘엘 시스테마’란 음악 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호세 안또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가 며칠전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무차별한 폭력과 마약에 시달리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또까르 이 루차르’ (Tocar y Luchar, 연주하면서 싸워라)란 슬로건으로 음악 교육을 시작한 것이 1975년이었다.  까라까스 시내 외곽의 가난한 빈민 지역 ‘뻬따레’ (Petare) 화벨라에서만 매년 16000명이 총격 살인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곳 빈민가에서도  엘 시스테마가 시작되자 청소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과연 음악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 시킬 수 있었다. 또 음악은 빈곤과 도시 폭력의 살벌한 환경에서 소망을 잃은채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었다.  

음악으로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 그의 신념에  뜻을 같이한  9명의  뮤지션들이 차고에서 동네 꼬마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작한 것이 ‘엘 시스테마’ 의 유래가 되었다. 현재는 베네수엘라 전국에서 70만명 이상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 합창단으로 성장하였고,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와 유네스코로부터 수상한 300여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로 연주 무대에 서고 있다.인근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본뜬 음악 학교 확산에 크게 기여를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도 소외 지역에 꿈나무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게하는 건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안데스의 작은 도시 발레라에서 태어난 호세 아브레우.  아홉세되던 해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수도 까라까스로 옮겨 작곡을 공부했다. 경제학자로  안드레 벨로 카톨릭 대학교 교수,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도 40여년 넘게 음악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에 진력했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살피지  못했다. 만성적인 위궤양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 그토록 좋아했던 담배와 초콜릿을 끊어야 했다. 한낮의 찌는듯한 여름 날씨에도 그는 늘 모직 외투를 입고 추워했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 지휘자가 구스따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다. 28세에 LA 필하모닉 음악 감독이 된 그는 베를린 필, 빈 필 같은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앞다퉈 모시는 거장이 됐다.

워싱턴 한인사회 기라성 같은 한인 뮤지션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엘 시스테마가 시작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티노 어린 청소년들, 제3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음악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꿈과 비젼을 갖게 살 그런 날들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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