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마사(La Maza)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대모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부른 ‘라 마사’는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인 노래다. 아르헨티나 투쿠만에서 출생한 소사는 15세때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였고, 코스킨 페스티벌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또도 깜비아’ (Todo Cambia모든 것은 변한다), ‘그라시아 아 라 비다’ (Gracia a la Vida, 삶에 대한 감사) ‘쏠로 레 삐도 아 디오스’ (Solo le pido a Dios, 신에게 드리는 한가지 기도) 등 서정적인 가사와 안데스 인디오의 선율과 소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안데스를 울리는 청아한 바람소리 같다.

 

‘누에바 깐시온’ (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운동)은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안데스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을 발굴하고, 그것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군사독재 아래 착취받는 가난한 시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제국주의의 문화침략에 저항하고 맞서 싸운 노래운동을 말한다. 1959년 쿠바혁명을 동력으로 해서 1970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출범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된 민족문화운동이었다.

 

‘누에바 깐시온’의 선구자는 아르헨티나의 음유시인 아타우알파 유팡키인데 누에바 깐시온의 아버지처럼 불린다. 그의 이름에 담겨진 의미가 특이하다. 스페인 침략자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 또 잉카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9대 왕 파차쿠티 잉카 유팡키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가 유럽 문화에 비교하여 결코 손색이 없고 열등하지 않다는 자긍심을 갖고 아르헨티나 곳곳을 찾아 다니며 유서 깊은 안데스의 전통 민속음악을 채보했다.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300여년동안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태양의 제국 잉카 (콜롬비아, 에콰돌, 페루,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인디오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각성과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칠레의 음유시인이면서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에 대한 저항적 노래를 불렀던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는 누에바 깐시온의 어머니로 불려지고, 빅토르 하라, 레온 히에꼬, 조안 바에즈, 파쿤도 까브랄도 라틴아메리카 전통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운동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파블로 네루다의 뛰어난 문학성과 풍부한 음악적 자산이 누에바 깐시온의 노랫말이 되었다. 아름다운 안데스의 자연과 그곳에 동화되어 삶을 이어오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신변잡기들이 인디오의 선율에 합쳐지자 저들은 환호했다.

오랜 식민지배를 통해 철저하게 파괴된 자국 문명과 역사들, 탄압과 인권유린, 베어진 핏줄에서 흘러 땅을 적셨던 고귀한 생명과 그 땅의 온갖 자원들의 착취와 수탈에 아파했던 저들이 누에바 깐시온을 듣고 부르며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이미 라틴 아메리카 민족운동의 큰 줄기로 자리 잡았고, 가난한 시민들을 억압하는 제도, 집단, 계급, 문화를 추방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독재정권과 지배자들의 기반을 허무는데 큰 몫을 했다. 정치에서 종속을 거부하고, 경제에서 착취를 반대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에서 정체불명의 제국주의 문화 침투를 배격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러한 저항운동에는 당연히 혹독한 탄압과 희생이 뒤따랐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vio Rodriguez)가 어쿠스틱 기타와 땀보르 반주에 맞춰 부른 ‘라 마사’를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교 총격 사건이후 미 전국에서 2500개 이상의 고교생들이 총기 규제를 외치는 평화 시위에 헌정하고 싶다. 오는 24일 워싱턴 디씨에서 있게 될 평화적 시위에 주의 은총 가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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