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교회의 흡인력과 팽창력

한인 교회의 흡인력과 팽창력

이스라엘이 맡은 임무를 수행할 때 두 가지 힘이 작용했다. 흡인력으로 저음에는 성막으로, 후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상징된다. 이 건물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는 장소였다. 거룩한 장소로써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과 풍습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성막과 성전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성전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이 나타난 증거 때문에 이스라엘에 관심을 가졌던 여러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기록하는데, 그중에는 모압여인 룻과 수리아의 나아만 등이 있다. 오순절에 천하 각국으로부터 경건한 사람들이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는 것으로 보아,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열방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수동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었다. 두 번째로 작용하던 힘은 적극적인 팽창력이다. 팽창력은 이스라엘 경계 밖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내개 위한 힘이었다. 다른 나라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 사용된 이스라엘 사람들로는 요셉과 같은 노예, 다니엘이나 에스더 같은 포로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니느웨에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명령받았던 선지자 요나도 있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선지자로 임명되었다. 하나님의 선교가 진행될 때 사람들이 자의로 지원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결정적인 요소가 된 적은 한번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자원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 백성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파하실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기꺼이 도구로 참여했더라면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기꺼이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 순종을 심판하시고 또한 이스라엘의 경계 너머까지 증거하려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유배를 떠나게 하셨다. 이 두 역동적 힘은 오늘날에도 작용한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물질적인 부와 안정이라는 하나님 복의 증거를 보며 여러 기독교 국가에 매력을 느끼고 또 그곳으로 가고자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지역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분명히 보여 주는 회중에게 사람들이 모인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경건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와 같은 자질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다가간다. 하지만 복음은 그저 이렇게 수동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임으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넘어야 할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 장벽들이 너무 많다.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 임무를 기꺼이 감당하고자 한다면, 복음을 들고 열방에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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