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지오바니 마르떼스

아디오스 지오바니 마르떼스  

‘라 게라 델 풋볼’ (La Guerra del Futbol, 축구 전쟁)이 1969년 7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벌어졌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탈락한 온두라스가 자국내 거주하던  살바도리안들에게 분풀이 폭력을 가하자 이에 격분한 엘살바도르가 육군과 공군기를 동원하여 국경을 넘었고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미주기구의 적극적인 중재로 5일만에 종전 되었지만 양국간 수천명이 희생되었고 경제적 피해가 심대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후 군부 독재가 계속되었고, 1982년 이후 마르크스 이념으로 무장한 싼디니스트 반정부 게릴라와 벌인 전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위치해 년중 크고 작은 지진과 화산활동이 있고, 가공할만한 허리케인이 엄습하는 자연 재해 빈발지역이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전체 인구 780만명 중 60% 이상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막노동으로 번 노임이  가족 부양을 위해 송금되고 있는데 전체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벽오지에 거주하는 메스티조들과 아메리인디오들의 빈곤율은 더욱 심각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고,  다국적 기업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한 경제 환경에서 고작 바나나와 커피를 대리 경작하며 생존하기에는 너무 열악하기만 하다.  가난을 떨쳐 보려고, 만연된 부정부패와  살벌한 환경이 두려워 무작정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 국경 넘어 미국으로 쇄도하고 있고, 그마저 온전치 않으면 멕시코 내 대도시로 유입되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가디언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50곳’에 의하면 온두라스의  ‘싼 뻬드로 술라’(San Pedro Sula)가   10만명 당 169명 살인으로 최고의 극악무도한 도시가 되었다. 2위는 멕시코 아까뿔꼬로 142명, 3위는 베네수엘라 까라까스 118명, 브라질 마세이오가 85명, 콜롬비아 깔리 79명, 자메이카 킹스타운 순으로 악명 높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경홀이 여겨지는 싼 뻬드로 술라는 지난 20년간 급 팽창하면서 길거리 갱단을 통제하지 못해 살인, 납치, 마약 밀매, 경쟁자 마피아 간에 보복 전쟁이 끊임없는 범죄의 도시로 전락했다.  후안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온두라스 내의 마약 조직들과  MS-18, MS-13 갱단은 이라크와  시리아 내의 무장단체 ISIS 보다 더 극렬하고 과격해지고 있다”며 심각한 치안부재를 우려하고 있다. 

지오바니 마르띠네스의 유해가  운구되기 직전 마지막 추모 예배가 컬모 UMC에서 있었다. 그의 동료들과 굿스푼 사역자들이 함께 한 예배에는 아직도 그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 듯 침통함이 가득했다.

지오바니가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향할 때  나이가 20살 이었다. 가족 모두는 성한 몸으로 다시 재회할 것을 날마다 염원했었다.  차거운 주검이 되어 투박한 관에 누운채 다시 귀향길에 오를줄 아무도 몰랐다. 잦아드는 슬픔으로 오열하는 조문객들에게 내어 놓은  따말레스와  커피가 테이블 위에 쓸쓸히 놓여진 채 식어갔다. 아디오스  지오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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