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절의 유래

부림절의 유래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좇아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을 인하여 뜻을 정하고 자기와 자손과 자기와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한 정기에 이 두 날을 연하여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도,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  (에스더 9:26-28)  ‘부림’이라는 말은 ‘제비’란 뜻의 고대 페르시아어 ‘부르’(Pur)에서 유래되었다. 지정(指定) 또는 운명이란 뜻의 현대 이란의 단어 ‘파레’의 뿌리가 바로 이 말이다. 이 ‘부르’라는 말에 히브리어 복수형 종결어미 ‘-im’이 붙어 부림이 된 것이다. 살만에셀 3세(BC 858~824) 통치 시기에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그 해의 길일들을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그때 사용한 주사위가 남아 있는데 그 위에 ‘Pur’라는 명각이 있다.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운명을 믿었고, 그 운명에 따라 행동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부림절의 기원을 담고 있는 구약 성경 에스더는 운명이란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어긋날 때는 바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33) 하만과 모르드개의 운명이 바뀐 것이 그 예이고, 유대인과 유대인 원수들의 운명이 바뀐 것이 그 예이다. 또 왕후 와스디와 에스더의 운명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운명이란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운명의 손이란 결국 하나님의 손이다.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오고 있는 부림절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만으로 인해 지어졌다. 그는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유대인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그의 민족까지 모두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위해 길일을 얻으려고 점쟁이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하만이 다음과 같은 말씀에 주의했더라면 결국 자신의 열 아들의 사망일이 되어버릴 날을 점쟁이에게 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민수기 23:23-24)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54:17) 하만은 ‘부르’를 통해 유대인을 모조리 죽이는 날을 12월(아달월) 13일로 정했으나 (에 3:7), 그날은 도리어 유대인의 구원의 날이 되었다. 현재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구원의 사건들을 기념하고 있다. 유월절과 부림절은 시기적으로 서로 가까운, 유대 민족의 대표적이고 역사적인 구원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유월절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부림절은 기적다운 기적 하나 없이,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의 날이었다. 그것을 분명히 보기 위해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자.

 

이러한 질문들과 관련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성취할 도구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의 모든 자녀들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신다. 그러므로 다른 곳을 바라기보다는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만물로 하여금 법칙대로 돌아가게 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그들의 마음과 생각, 야망과 열정대로 행하게 하면서도 그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놀라운 방법이다. 세 번째로, 사흘 밤낮을 금식한 후 죽음을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에게 내밀어진 금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명절>의 저자 콜슨 쉐퍼드는 이에 대한 의미 깊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약속된 메시야로서,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위해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 주신 예수님을 내세우고 있다. 먼 옛날 에스더에게 금홀이 내밀어지지 않았다면 왕에게 다가갈 수 없었듯이 오늘날도 금홀, 즉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유대인과 이방인 그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수기 24:17) 그 외에도 구약 성경 에스더 속에 내포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사건의 흐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행해지는 부림절의 축제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보자.

하만의 이름을 도말하는 부림절 관습. 현재 텔아비브에서는 아달월 14일을, 예루살렘에서는 15일을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윤달이 겹쳐 한 해에 두 번의 아달월이 있을 경우 유대인들은 두 번째 아달월의 14, 15일을 부림절로 지킨다. 첫 번째 부림절이 윤달이 있는 해의 두 번째 아달월에 있었기 때문이다. 윤달이 겹친 첫 번째 아달월의 14, 15일은 ‘푸림 카탄’(Minor Purim, 작은 부림절)이라고 부른다. ‘푸림 카탄’에는 부림절 축제를 하지 않는다. 부림절 행사도 없다. 그러나 이 날에는 금식하는 일과 장례 행사도 하지 않는다. 절망이 기쁨으로 바뀌고 초상날이 축제일로 바뀐 날이며, 유대인들이 원수의 악한 계교에서 풀려난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첫 부림절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대적들을 죽이고 잔치를 벌였다. 각 도에 있는 유대인들은 아달월 14일에 승리를 경축했고, 수산 성에 있는 유대인들은 15일에 경축했다. 모르드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선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로 삼으라고 하였다. 민족적 구원의 기쁨에 모든 유대인들이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림절이 되면 최소한 두 사람 이상에게 음식을 마련하여 보내며, 두 명 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보내는 풍습을 지킨다. 2세기 때 유명했던 랍비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대인 축제의 반은 찬양과 기도하는 일이고, 반은 먹고 즐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대인의 전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통 유대교인들은 관례에 따라 부림절 축제 하루 전날에 반드시 금식한다. 왕비 에스더가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때 금식을 명하고 자신도 금식한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이 금식일은 ‘타아니트 에스델’(에스더의 금식)이라고 불린다. 민족 말살의 비운을 새기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은 즐겁고 기쁜 생활로 돌아간다. 오늘날은 모든 유대인들이 반드시 금식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페르시아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은 모두 금식한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부림절은 반드시 안식일과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에 므길라(Megillah, 유대 연례절기에 관계된 룻기, 아가서, 예레미야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섯 권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읽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므길라 중 아가서는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에,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상기하기 위해 열리는 금식 절기에, 전도서는 초막절에, 에스더는 부림절에 읽는다. 부림절 직전 안식일에는 신명기 25장 17절에서 19절까지를 읽는데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로 시작한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명기 25:17-19) 부림절 날 모든 유대인들은 회당에 나가서 에스더서를 꼭 읽어야 한다. 모두 함께 읽는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부림절의 구원을 개인적 차원이라기보다 민족적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다. 중병으로 회당에 갈 수 없는 사람은 집에서라도 에스더서를 읽어야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구속에 대한 네 개의 구절 (에 2:5, 2:8, 2:15-16, 10:3) 은 다른 구절보다 더 큰 소리로 읽어야 했다. 읽는 중에 하만의 이름이 나오면 그때마다 특별한 기구로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그레거스(Greggers) 혹은 라 아샤님(Ra-ashanim)이라 불리는 이 기구는 손에 쥐고 돌리면 나무가 톱니를 지나는데 그때 따다닥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린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악한 이여, 비겁자여!” 하면서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소음을 내어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풍습은 아말렉의 이름을 없애라는 구약 성경의 명령에 근거한다. 신 25:19 참조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말렉 족속이기 때문이다. 또, 에스더서를 읽을 때 9장 7절에서 10절 사이에 나오는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을 한숨에 읽어야 한다. 그들이 한꺼번에 처형됐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두루마리를 다 읽고 나면 사탕을 나누고 선물을 교환하며 남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낸다. 유대인들은 부림절 점심 때부터 저녁까지 많은 음식을 먹는다. 이때 삶은 콩과 완두콩을 먹는데 이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궁중에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피하고 채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후식으로는 흔히 양귀비 씨나 과일을 넣어 만든 삼각형 과자를 먹는데 당시 유대인의 재산을 약탈하여 채우고자 하였던 하만의 주머니에서 따온 ‘하만타셴’(Hamantaschen, 하만의 주머니) 혹은 ‘오즈네이하만’(Oznei Haman, 하만의 귀) 이라고 부른다.  부림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면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악한 하만의 가면, 폐위된 와스디와 아름다운 에스더의 가면, 아하수에로 왕의 가면, 웃는 모르드개의 가면 등 다양한 가면을 만든다. 여러 나라의 풍속에 따라 옷을 입은 남녀들은 가면을 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장행렬을 한다. 이때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가두 행진을 하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아드라야다’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드 델라 야다 베인 아루르 하만 레바루흐 모르데카이”(저주받은 하만과 축복받은 모르드개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까지 기뻐해야 한다)라는 탈무드의 구절에서 온 말이다. 어떤 지방에서는 하만을 본떠 만든 인형을 불사르거나 걸림돌에 하만의 그림이나 이름을 써 두는 풍습이 있다. 또 신발 바닥에 하만의 이름을 쓰고 이를 밟기도 한다. 일부 유대인들은 종이에 하만의 이름을 써서 찢는다. 이런 행위들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마음껏 누리기 위한 것이다. 이날만은 술 취함도 허용되었다. 이것은 정통 유대인들의 가르침에 위배되지만, 이날만큼은 비교적 모든 규율의 제한을 받지 않았다. 무질서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부림절에는 모든 행위가 가능했던 것이다.      부림절에 행해지는 특이한 행동들은 유대인들에게 “우리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영원히 존재하는 유대인이다” 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지방에 따라 작은 다른 부림절들이 많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들이 경험한 구원의 역사를 ‘푸림 카탄 (작은 부림절)’으로 지키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소수 민족으로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하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1741년 이래로 헤브론에 살던 유대인들은 엄청난 양의 세금을 부과 받았는데 세금을 내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든지 노예가 되어야 했다. 이 일에서 구출된 것을 해마다 기념하여 ‘푸림 타카(창문 부림절)’로 지킨다. 보헤미아 지방의 브렌다이스(Brandeis) 가는 이방인을 죽이려고 자두 잼에 독을 넣어 팔았다는 누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으나 구출되었다. 보헤미아의 융 분츠라우 지방에서는 해마다 이 일을 기념하여 유대인이 구출된 것을 축하한다. 이것은 다른 ‘푸림 카탄’에 해당한다. 부림절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봄철에 두 번이나 부림절을 축하한다. 첫 번째 부림절과 더불어 애굽의 노예 생활 400년에서 구출받은 날을 두 번째 부림절로 기념하는 것이다. 2세기 때의 유명한 랍비 아키바에게 어떤 이방인이 물었다.  “예언자 이사야는 ‘너희의 절기와 예물을 내가 미워한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왜 축제를 지키고 있습니까?”    “잘 보십시오. 너희의 제물이라고 했지, 하나님의 제물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절기의 축제와 제물이 인간들의 향락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절기의 축제와 제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부림절의 의의

부림절 축제의 의의는 핍박 받는 유대인이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떤 상황 속에 산다 할지라도 유대인은 인간의 흉계에 의해서 멸절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을 매년 기리는 것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다. 박해를 가하는 대상은 세계 최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들이었다. 애굽 이후,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이었지만, 그들은 멸절하지 않고 살아남아 왔다. 그리스도 이전의 시대에 유대 민족의 생존은 교회의 존재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생존과 관계있는 구약 성경 에스더는 유대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익명의 고대 유대인 작가는 “모든 예언서와 기록들이 잊혀진다 할지라도 에스더는 기억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고,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유대인들을 억압하면서 “만일 나치가 전쟁에서 패한다면 유대인들은 두 번째 부림절을 경축할 것이다” 라고 비꼬았다.  히틀러가 그런 말을 하게 된 일화가 있다. 나치의 대공격이 시작될 때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저주하면서 고함치고 있었는데 한 유대인이 맨 앞줄에 앉아 경멸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설이 끝났을 때 히틀러의 부하들은 그를 히틀러에게 넘겨주었다. 히틀러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유대인이요.” “당신은 내가,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웃을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당신은 우리를 멸하고자 노력했던 첫 번째 통치자가 아니오. 애굽의 바로도 우리를 죽이려고 했소.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매년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고 있소. 나중에 하만도 우리를 진멸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매년 하만타셴을 먹고 있소. 그러니 내가 당신이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웃지 않을 수 있겠소? 히틀러! 나는 당신의 몰락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또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어떤 성일을 지킬지가 궁금하오.” 이는 여호와를 믿는 그들의 믿음에 기초한 담대함이라고 할 수 있다. 믿는 성도인 우리 역시 우리를 해하려는 대적에게 직접 원수를 갚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인내한다면 우리의 의로움을 아시는 분이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다. 즉 교회의 대적들이 우리를 잡으려고 몰래 쳐놓은 올무에 그들 자신이 걸릴 것이다. 이것이 부림절의 숨은 뜻이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처형대와 아달월 13일이 도리어 그 자신과 열 아들이 매달린 교수대가 되었고, 멸망의 날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합한 간절한 기도가 요구되었다. 하나님을 믿되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수고하고, 그 후에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그 결과를 맡겨야 한다.  장래에도 부림절이 있을 것이다. 먼 옛날 페르시아에서 유대인의 적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미래에도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나,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볼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진리를 방해하는 원수들이 결단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를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데살로니가후서 1:6-7)